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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여년 전쯤 김용옥의 철학강의가 티브이에서 유행한 적이 있었다
웃삽맨 최형만이 따라했었고 그 뒤로는 짤방으로 가끔씩 보이기도 하는 유명한 강의였다 그때 김용옥은 동양철학이든 서양철학이든 일단 얘깃거리로 올리면 마치 자신이 모든 내용을 관통하고 있는 것처럼 둘러치면서 특유의 목소리와 단정적인 태도로 쉽게 쉽게 빠르게 설명하곤 했다
나는 그 강의를 제대로 본 적은 없지만 우연히 마주칠 때마다 불쾌한 감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 당시 나는 잠깐 예술학을 전공하면서 마침 칸트 미학으로 머리가 터질 것 같았던 시기였는데 김용옥은 내가 걸려 넘어졌던 몇 가지 인식론적 문제에 대해 아무 것도 아니고 별 내용도 없는 것이라고 카랑카랑하게 소리질렀고 그 앞에 앉아있던 방청객들은 박수를 치거나 끄덕거리면서 동조하곤 했다 사람들이 많이 좋아해주었던 김용옥의 강의는 결과적으로 어떤 방식으로든 철학적 저변을 넓히는 데 많은 공헌이 있었을꺼라 짐작하고 있지만 그 사람들의 대부분은 쉽게 다가가기 힘든 철학이라는 것에 대해 자신들의 언어로 설명해주는 것에 만족스러웠던 것이라고 본다 김용옥이 김용옥식으로 칸트를 이해하는 것에 대해서는 내 알바 아니고 당연히 나보다 훨씬 이해의 폭이 넓을 꺼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나는 아직도 그들은 칸트에 대해 아무 것도 배우지 못했을꺼라 생각한다 어렸던 나에게 그 강의는 마치 김용옥이라는 지적권력에게 자신들의 무지에 대한 핑계를 부여받는 종교적 장이었다 쉬운 것을 어렵게 설명하는 것은 물론 바람직하지 않겠지만 어려운 것은 어렵게 설명되어야 함이 마땅하다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글을 쓰는 것도 중요한 것이긴 하지만 학자에게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확하게 자신의 이론을 설명하는 것이다 논지가 진행되어 가는 동안 수시로 등장하는 각 개념들과 그 사이의 논리적 연관성들을 한 단계씩 밝혀나가는 것이 학적 프레임에 기반한 글을 이해하는 방법이라고 한다면 어려운 것이 어렵게 설명되었다고 해서 즉 자신의 이해의 수준을 넘어서 있다고 해서 감정적으로 섣불리 성질내고 불만을 표하는 것은 일단 별로 바람직한 자세가 아니다 도대체 뭘 어쩌자는 것인가 특히 서구의 프레임으로 구축된 문화현상 독해의 몇몇 방법론에 있어서 번역의 문제는 매우 예민한 사항이긴 하나 개념들을 한국어로 번역하지 않았다는 것 자체로 잘난척 하고 있네 하며 비아냥거리는 것은 싸가지 없는 짓이다 글쓴이가 쾌락이라고 쓰는 대신에 주이상스라고 굳이 썼다면 불어의 주이상스와 한국어의 쾌락이 지칭하는 바를 어떻게 다른 지 혹은 라캉의 콘텍스트 안에서 주이상스라는 개념이 어떤 것을 호명하는지 알아볼 일이다 도서관에 갈 필요도 없고 위키라도 뒤지면 금새 나오는 개념들인데 혼자 그 과정을 수행하는 것조차 귀찮고 어렵다면 이택광 교수에게 질문할 수도 있었을 것이고 질문의 과정에서 교수도 스스로 점검하는 계기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 과정을 소통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을 단지 귀찮다고 해서 주이상스를 자신의 이해영역에 들어있는 쾌락이라는 개념으로 일대일 대응시키고 있는 스스로에 대한 반성이 없다보면 늘 미끄러질 것이며 자빠져 있는 스스로가 쪽팔리다고 해서 팽하고 성질부리는 것은 자신은 무식한데다가 예의까지 없고 심지어는 게으르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이러한 반지성적 감수성이 어디로부터 연유하는지는 알 길이 없으나 눈에 잘 보이지 않고 언어로서 이해해야 하는 인문학의 특성으로 인해 스스로가 그만큼 쉽게 그 전문성을 침범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야 할 것이다 즉 인문학이 상아탑에 올라가서 지들끼리 잘난척 하고 있다고 떠들기 전에 한국어를 듣고 읽을 수 있다고 해서 모든 텍스트를 즉각적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혹은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고 이해하게끔 씌여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먼저 점검해보아야 할 것이다 게다가 설상가상 몇몇 되바라진 작자들은 몇 가지 단어나 논지의 전개 자체에 일단 알러지 반응을 보이면서 텍스트 뒤에 응큼한 자기 과시가 숨어있을꺼라 확신하는 모양인데 이것은 민족주의 코드를 뺀 진중권과 디워의 경우처럼 학계 전반에 대한 냉소적인 불만으로 인한 허세처럼 보인다 자신의 프레임에서 이해되지 않은 것을 이해하고 있다고 여기거나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중요치 않은 것이라 제끼는 것으로 스스로의 자존심이 설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참 한심한 일이다 교조적으로 글을 써서 사람 속을 긁는 학자들이야 태도의 문제가 있겠지만 이택광의 이번 글은 소녀시대의 팬들을 향한 가르침도 아니었고 이택광이 이해한 라캉이라는 프레임으로 소녀시대를 분석한 것 뿐이었다 거기에 몇 가지 정치적인 이슈들이 첨가되고 문화현상에 대한 전제가 조금쯤 성급하게 이루어졌으며 사용된 외래어와 상관없이 글 자체가 번역체로 씌여져서 오독과 논쟁의 여지가 있다는 것 정도는 이해하겠지만 산을 올라가 본 사람이 산을 어떻게 올랐나 설명하고 있는데 (나처럼) 오르기 싫다면 그냥 그렇구나 하며 넘기면 될 일을 넌 왜 산 오른걸 자랑하고 있냐며 비아냥거리고 있는 것을 보자니 아가리를 찢어 에크리 전집을 쳐박아 주고 싶은 심정이 든다 나는 그 블로그를 들릴 때 마다 지루한 글솜씨에도 불구하고 좌파 라카니안의 세상에 대한 꼬장꼬장함이 느껴져서 즐겨 읽는 편이다 또한 한 교수가 자신의 전문영역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글을 캐주얼하게 꾸준히 쓰는 것은 학계에서 매우 특이한 일임을 대학원을 경험하면서 알고 있기도 하다 물론 요즘은 라캉이 말장난에 치우쳐 있다는 식으로 비판받고 있긴 하지만 온갖 음흉한 무의식들이 실타래처럼 얽혀있는 한국이라는 지형에서 가끔씩 터지는 이러한 괴상한 현상들이야 말로 라카니안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흥미로운 주제가 될 것임을 생각하면 라캉의 이론들이 한국에서 폐기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생각도 든다 물론 재미는 더럽게 없지만 불어를 알면 또 재밌을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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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ery body dance now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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